그리움과 소중함에 대하여 짧게 얘기해보고 싶어서 이 글을 시작했다. 그저 기록하기 위함이다. 그리움과 소중함은 살짝의 상관 관계가 있다. 당신이 어떤 것의 소중함을 알면 밀려오는 그리움은 덜 할 것이고, 아니라면 그리움은 커질 것이다. 일종의 후회랑 같다. “그 때의 나는 왜 그것의 소중함을 몰랐을까?”는 결국 그리움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이제 그리움과 소중함에 대하여 차근차근 얘기해보도록 하자.
여름
날씨가 너무 추워지고 있는데 이럴 때면 여름의 매미 소리, 바쁨을 잠시 잊고 해질녘 초록 나뭇잎들이 서로를 스치고 물이 졸졸 흐르는 청계천에 옹기종기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연인들과 직장 동료로 보이는 사람들이 그립다. 무더운 여름날 해방촌에서 서울을 바라보며 맥주 한 잔 하며 하루를 끝 맺는 사람들도 그립다. 여름방학이면 잠자리를 잡던 소년과 소녀도 그립고 맑은 하늘에 둥둥 떠있는 파란 바탕을 빼곡히 채우는 뭉게구름도 그립다. 여름이면 나는 메밀소바에 파가 많이 들어간 만두를 즐겨 먹었다. 또, 자취할때 많이 먹었던 비빔면과 시원한 아이스크림, 냉우동과 치킨너겟도 좋아했다.
하지만 그리 푸르던 여름도 한 때였고, 그 여름은 다시 오지는 않을 테지. 여름은 다시 오더라도 그 때의 그 여름은 오진 않을 거야. 사실 생각해보면 여름은 별거 아니었잖아. 무더웠고 가끔은 우리를 불쾌하게 만들고, 후덥지근한,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은, 잠 못 이루는, 지긋지긋한 그런 나날들이었잖아.
작년의 12월을 생각해보고 그 때의 기분을 떠올려보면 더위가 조금은 가시는 것 같다. 여름의 무더위를 마음속에 간직해 추운 겨울에 써먹도록.
그럼에도 나는 여름을 사랑한다. 나의 캐나다의 여름과 싱가포르의 여름 한국의 여름은 각각의 특색이 있다.
한국의 여름은 나에겐 ‘쉼’ 이었고 푸르던 청춘의 한 페이지였다. 캐나다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 돌아오면 6월 말이었으니까.
캐나다의 여름도 특별했다. 나는 white rock이라는 바닷가 주변 도시를 정말 좋아한다. 그 곳 푸드트럭에서 파는 미니 도넛들과 피쉬 앤 칩스를 먹으면 학업 때문에 받았던 스트레스도 날아간다. 버스에서 내려 바닷가로 향할 때, 엄청난 경사의 도로를 걸어 내려가며 햇빛을 비추는 바다를 볼 때 내 마음은 들뜬다. Pier를 쭉 걷고 내가 걸었던 길을 되돌아보면 옹기종기 모여있는 소꿉 장난감 같은 집들은 다채롭다. 철도 길을 따라, 바다를 눈 앞에 두고 쭉 걸으면 춥거나 덥거나 설렘은 파도같이 내 마음에 매몰아친다. 캐나다를 떠나기 전 마지막 날도 white rock에서 보냈었다. 아마 한국에 white rock의 향수를 불러 올만한 장소가 있기는 할까.
싱가포르는 1년 내내 여름이다. 사실 싱가포르에서는 거의 학교만 다니고 학업에 집중했기 때문에 그리움 내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아있지는 않다. 하지만 가끔 공부만 하던 그 때의 내가 그립기도 하고, 열심히 운동했던 운동 초보였던 나, 첫 자취 경험 등등 사소하지만 기억에 남는다. 특히 자취는 정말 재밌었다. 캐나다에서 살 때는 내가 먹고 싶은 것들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새벽까지 거실에 나가있을 수 없었는데, 싱가포르에서는 새벽에 야식을 먹을 수도 있고, 한 번은 아침 10시에 일어나 강의 듣고 과제 하고 코딩 하고 하면서 새벽 6시 까지 안 자고 해가 뜨자마자 집 앞에 있던 공원으로 조깅 하러갔던게 기억난다. 그 때의 나는 참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살았었다.. ㅋㅋㅋㅋㅋ
이런 모든 것들은 여름이라는 계절 안에 담겨있다.
겨울
한국의 겨울을 나는 사랑한다. 유학 생활 때도 겨울에 한국 만큼은 짧더라도 꼭 오고 싶어했다. 집이 좋은건가.. 뭐가 그렇게 좋은지는 몰라도 한국의 연말은 너무 행복하다.
겨울에는 사소한 행복들로 내 삶을 채워나가는 것 같다. 예를 들자면
군 고구마 먹기
귤 까먹기
캐롤 듣기
눈 사람 만드는 아이들 구경하기
코코아 한 잔
여름에 못해봤던 벙어리 장갑, 목도리들로 코디 해보기
이런 겨울이기에 할 수 있는 것들은 너무 소중하니까 이 글을 읽는 당신들도 이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소중하다고 생각하며 지금을 즐기면 좋겠다. 지금 이게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면 나중에 밀려오는 그리움은 더 커질 것이다.
싱가포르는 겨울이 없다. 12월에 33도.. 쪄 죽을 것 같은데 크리스마스 트리는 예쁘게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보고 빨리 떠나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캐나다의 겨울은 그리 춥지 않다. 내가 있던 곳은 Vancouver주변인데 이곳은 따뜻하다. 캐나다 하면 겨울과 크리스마스인데, 3번의 크리스마스를 보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 번 빼고는 다 집에서 보냈다. 밖에서 보냈던 때는 놀랍게도 white christmas였었다. 홈스테이한테 따뜻한 내복이랑 과자들 선물 받은게 기억나는데 참 그립다. 크리스마스가 있는 이유는 추운 겨울을 저런 따뜻한 마음으로 녹이기 위해서 아닐까?
마치며
이 글은 당신에게 딱히 도움 될만한 말은 없다. 단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소중함을 잃어 무언가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리움에 힘들 때가 오면 그런 그리움은 다 좋은 추억이라고만 생각해라. 그러면 향수병에 걸리지 않을 뿐더러 당신의 마음이 더 편하고, 그 기억은 설렘으로 바뀔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