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 밤 그리고 새벽

해질녘, 밤 그리고 새벽

오늘 5시 25분, 오랜만에 시원한 밤 공기를 느꼈다. 1월이지만 날씨가 풀린 건지 기분 좋은 차가운 공기로 가득 차 있는 거리를 걸었다.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다. 숨을 쉬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다. 오늘 맡았던 밤 공기 냄새는 내가 정말 그리워하는 냄새였다. 캐나다의 날씨 좋은 4월의 어느 날 같은 느낌 이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아침에 울었던 참새와 산 비둘기는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가득 찬 찬 공기 속을 비집고 나는 숨을 내 쉬고 있고 내 숨이 찬 공기와 만나 입김을 만든다. 너무 늦지도, 그렇다고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것도 아닌 한국 1월의 오후 5시.

해질녘 이었다.

어제의 해질녘과 오늘의 해질녘은 달랐고, 오늘의 해질녘과 내일의 해질녘 또한 다를 것이다. 텅 빈 하늘이라는 도화지에 구름이라는 것을 그려 나간다. 태양은 그 구름과 하늘을 매일, 정해진 시간에 가지각색으로 물들인다. 그 색깔은 매일 다르다. 어쩔 때는 파란색으로 시작해서 노란색, 그리고 빨간색으로 서서히 명암지며 우리의 하루를 마무리해준다. 어떤 날에는 핑크색으로 하늘을 뒤덮는다. 또 어떤 날에는 아예 회색 구름으로 뒤덮는다. 또 어떤 날에는…..

해질녘이 되자 서서히 길가에 가로등이 켜진다. 4호선은 언제나 그렇듯 동작대교 위를 지나간다. 7호선은 언제나 그렇듯 뚝섬 유원지역을 통과한다. 올림픽 대로와 강변북로에 지나는 차들은 서서히 밤 하늘의 별빛과 같이 불을 밝힌다. 각자 저마다의 행선지가 있다. 누구는 퇴근 후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러 가고, 누구는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 애완동물을 만나러 간다. 해질녘 즈음 사람들이 서서히 학교와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온다. 아파트에 서서히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렇게 사소한 것들이 모여 지구 반쪽 부분의 밤을 “밝힌다”.

밤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사람들로 가득 차 무거웠던 공기가 서서히 가벼워져 그런지 내 마음도 같이 가벼워진다. 이런 가벼운 공기들 사이사이로 걷다 보면 무언가에 지쳤던, 기댈 곳이 필요했던, 상처 받았던 내 마음도 가볍게 비워지는 기분이다. 이것은 공허함이 아닌, 걱정 없는 마음이다. 비워졌지만, 공허하지 않다.

우리는 아침에 하는 드라이브보다 밤에 하는 드라이브를 더 좋아했다. 현실을 잠깐은 잊고, 그 가벼운 공기에 우리의 몸을 맡길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낮의 한강보다는 저녁의 한강을 더 좋아했다.

누군가는 이 밤을 어떻게 화려하게 보낼까 생각하고, 누군가는 이 밤을 어떻게 무사히 지내볼까 생각한다.

밤이었다.

새벽이 찾아왔다. 새벽은 우리를 어디론가 이끈다. 애기들은 꿈나라에 빠져있겠지만,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청년들은 아직도 깨어있다. 아이일 때 갔었던 꿈나라. 그 나라에 닿기 위해 어느새 성인이 된 청년들은 끈임 없이 노력한다.

또 어떤 사람은 감성적이게 된다. 새벽만 되면 괜히 뒤엎어지는게 우리의 감정이다. 그 감정에서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외로움이다. 같이 옆에 있어줄 사람 하나 없다는 사실, 혼자라는 사실, 이 혼자인 몸으로 내일 하루를 또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 거센 파도와 같이 우리를 집어 삼킨다. 우리는 꼼짝 없이 새벽에 당하고 만다.

그래도…. 새벽이 있어서 다행이다. 딱딱하고 차가웠던 우리의 마음을 감성적으로 녹여주는 것은 새벽이니 말이다. 그리곤 눈을 감는다. 눈을 감자 저절로 큰 숨이 내뱉어진다.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숨이었을까. 그 템포를 유지해서 계속 쉬어본다. 새벽에 집어 삼켜진 것인지 잠이 안 올 때도 있다. 옛 생각과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든다. 그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잠이 오지 않을 때면 괜히 나는 자는 자세를 바꿔본다. 매트리스 방향으로 얼굴을 하고 몸을 축 늘어뜨려 보기도 하고, 천장을 보고 가슴이나 복부에 손을 얹고 어깨부터 시작해서 발까지 몸에 힘을 전부 뺀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억지로 생각나면 1부터 10까지 센다. 아니면 침대를 두드리는 Tapping을 해본다. 집중력을 분산 시키기 위함이다. 양을 세는 것과 비슷하다. 서서히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잠에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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