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이두나!»를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꼽자면 두 개가 있다. «그 해 우리는»과 «나의 해방일지»이다. 두 작품 모두 훌륭한 작품으로 내 마음 속에 남아있다.
«그 해 우리는»은 순수하고 외롭기도 했었던 우리들의 고등학교 시절 연애를, «나의 해방일지»는 바쁜 나날들 속에 치여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 깊은 곳을 파고드는 현실적인 드라마이다.
«이두나!»는 내가 앞서 말했던 나의 최애 작품 두 개를 합쳐 놓은 것만 같았다.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은 원준이와 진주, 정훈, 윤택 그리고 수진 같은 주변 사람들. 두나 또한 우리의 삶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과거의 실수 때문에 평생을 힘들어하며 방 안에 자신을 가두고 있는 이들.. 사랑을 느껴보지 못하여 외로움 조차 모르는 사람들. 기댈 곳이 필요한 사람들 말이다. 마치 «나의 해방일지» 구씨가 두나 같다.
그렇게 «이두나!»가 나의 세 번째 최애 드라마가 되었다.
TMI: 드라마를 보다가 몇몇 장소가 내가 사는 곳이랑 차로 5분 거리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입이 더욱 되었다. 그들이 내 주변에 살아가고 있을 까봐.
💥(스포일러 있습니다)
서로의 우주
드라마를 보는 내내 이두나라는 캐릭터에 많이 몰입이 되었다. 나에게 오히려 현실성이 없었던건 원준이다. 현실에서 그렇게 다정하고 따뜻하고 순수한 남자는 많이 없다.
하지만, 두나처럼 마음 한켠에 무거운 짐들과 말하지 못하는 비밀들은 누구나 품고 살아간다.
두나의 우주와 원준의 우주는 다르다. 여기서 우주란 그들의 세상이다. 두나가 살아오면서 꾸려온 우주라는 공간은 어쩌면 바늘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만큼 위태로울 수도 있고 우주라기엔 너무 작은 공간일 수도 있다.
두나의 우주에서 빛나는 별이 원준의 우주에서 빛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크나큰 두나의 우주에서, 원준은 수 많은 은하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두나의 마음의 조각을 품고 있는 행성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또 어떤 날에는 원준이 그 행성에 도달해 두나에게 기쁜 날을 선물 해줄 수도 있다.
우주는 세상이라고 하였다. 두나와 원준은 살아온 배경이 다르다. 사랑받는게 직업이지만 사랑받지 못한 두나와 동생과 엄마를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원준.
다른 우주의 사람들, 완전히 다른 우주에 살고 있던 그들은 우연히 어떤 정류장에서 나란히 앉게 된 것 뿐이다.
이렇게 다른 두 우주가 만나면 빅뱅이 일어나 위태로울 수도 있다. 처음에는 서로를 잘 모르니 말이다.
어두운 우주에서 원준이 밝게 빛나고 있어도 두나는 그런 원준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두나 또한 빛나는 원준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원준은 말했다. “우리는 다른 우주에 있는 거 같아. 지금은... 우연히, 정류장에 나란히 앉아 있는 거고.” 평범한 대학생인 원준과 연예인의 삶을 살았었던 두나이기에 원준은 두나의 우주가 너무나도 깜깜하기만 하다.
원준은 말한다 “누나 같은 사람이 나랑..” 누나 같이 예쁘고 잘난 사람이 왜 자기같은 평범한 대학생을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인지 궁금해 한다.
이렇듯 가끔은 서로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있는 블랙홀에 휘청이기도 하고, 언제는 또 서로의 우주의 태양을 만나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둘을 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의 우주에 서로가 존재한다. 그 넓고 광활한 우주를 헤엄치다가 마침내 정류장에 도달한 것이다.
원준이 안긴 두나의 품은 잠시 거쳐가는 정류장이었을까 도착점이었을까?
어느 인생에나 변수는 생기는 거야. 네가 그랬지, 우리는 다른 우주의 사람들이라고, 완전히 다른 우주에 살고 있던 우리는 우연히 어떤 정류장에서 나란히 앉게 된 것뿐이라고. 네 말이 맞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게 너여서 좋았어.
- 이두나 1화 中
담배 연기
두나는 담배를 참 많이 핀다.
담배는 두나의 외로움과 애정결핍을 상징 한다. 무언가 계속 손에 잡고 입으로 물고 하려는 것 또한 담배에 중독되는 이유라고 한다.
혹시 드라마를 봤다면 두나가 원준에게 담배를 끊었다고 얘기할 때가 있다. 그 때가 원준이랑 끌어 안고 키스도 하고 그럴 때이다.
아마 사랑 받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더 이상 담배를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장치로 사용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사랑이 담배 연기처럼 잠깐 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래 오래 마음 속에 남아있으면 좋겠다.
추앙
원준이 두나에게 힘을 주었던 것과 두나의 어두웠던 세상에 불을 켜 줬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 에게 힘이 되고 싶다. 그치만 원준이 그랬던 것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다.
두나가 원준을 떠나고 솔로 가수로 컴백을 했을 때 원준의 마음은 어땠을지 깊게 생각하고 몰입하면서 봤던 것 같다.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보고 응원 하는 것이 전부인 원준의 세상이 공감이 되었고 원준의 우주가 얼마나 칠흑같이 어두웠고 추웠었는지도 공감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소개하는 대사는 내가 이 드라마에서 꽤 인상 깊었다고 느꼈던 대사이다.
내가 무슨 권리로 누나한테 화를 내요?
나 누나가 그 사람이랑 뭐 했는지 안 궁금해요.
나랑 뭐 하는 건지 그게 궁금해.
상관 없다고 생각 했거든?
외로워서 기대는 거든 그냥 노는 거든
뭐, 쉬는 거든 뭐든.
내가 괜찮고 내가 좋아하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고.
“내가 괜찮고 내가 좋아하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고.” 라는 원준의 대사를 보고 나는 원준이 두나를 추앙한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 사람이 뭘 하든 본인이 괜찮고 본인이 좋아하니까 상관없는 것이다.
근데 이렇게 철통 같던 마음도 무너져 내릴 때가 많다. 사실 매일 매일이 그러하다. 정말 사소한 것에 흔들리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고… 별 상상을 다 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다. 그리고 그런 날들은 우리를 심연에 가라앉게 만든다.
내가 느낀 점 - 보통의 날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는 걸까.
수 많은 우주(서로의 세상이 아닌 정말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 말이다)가 있을거라고 생각하나? 다중 우주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한 개가 아닌 여러 개라는 생각이다. 나는 맞다고 생각한다. 외계인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그 수많은 우주 중에서 700해 개의 별 중에서 우리가 이토록 푸른 별에서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태어나 비슷한 나이로 살아가는 것 조차 말이 안된다 (참고로 700해 개는 세계의 모든 해변과 사막에 있는 모래 알갱이의 수보다 10배나 많다).
모두가 살아온 환경이 너무나도 다르고 세상을 보는 눈도 다르다. 서로 안 맞는 점이 많을 테고 신기하게 통하는 점들도 많다.
어느 날 내 우주와 어떤 누군가의 우주가 만났을 때 그 사람의 우주가 어두운 심연 일지라도, 아니면 내 우주가 칠흑같은 어둠일지라도 그런 어둠 속에서 구해주고 구원 받고 싶다.
그 광활하고 넓은 우주 속에 빛나는 작은 별 하나를 알아차려 그 사람을 안아주고 싶은 마음.
그 사람의 마음이 끝없던 겨울과 미로의 연속일지라도 곁에 있어주고 싶은 마음. 두나라는 캐릭터가 이럴 듯 한데 나는 두나처럼 마음 속에 짐과 상처 하나는 두고 사는 사람에게 많이 끌리는 것 같다. 사실 어쩌면 자기 자신도 못 가누는 사람일 수도 있다. 동정과 연민의 감정이 아니다. 지켜주고 싶고 치유해주고 싶은 마음에 그런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것 같다. 예전부터 나는 사랑을 받는 것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는 것 같다.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보다는 주고 싶은 마음이 더욱 크다.
하지만, 내가 힘들 때에 나에게 힘을 주고 내가 기댈 수 있는 편안한 정거장 같은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나의 우주와 누군가의 우주가 만났을 때 초신성(supernova)을 일으켜 밝게 빛날 것이다. 참고로 초신성은 별의 진화의 마지막 단계로서, 그 규모는 엄청나게 커서 밝기가 은하계 전체의 밝기와 맞먹는다.
그리고.. 그런 사람과 보통의 날들을 보내는 것이 내 소원이다. 보통의 날이 뭘까. 그냥 일상이다 일상.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일상을 함께 할 수 있다니 정말 축복이다. 서로의 하루를 공유하고 그 하루를 서로 토닥여주는 그런 하루를 바라고 있다. 서로의 하루에 서로가 있는 그런 하루 말이다. 이게 참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정말 대단한 것이다.